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0월 1일, 오랜만에 필리의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창립멤버로서 현재는 고문으로 계시는 필리는 지난 10년간 거의 매 주 한번씩(!) 사무실을 방문해 상근활동가들과 점심을 함께 해 오셨는데요, 지난해 성산동 시민공간 나루로 옮겨온 후에도 그 걸음이 변치 않으셔서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계신답니다. 매 주 한번 한 시간씩 지하철 타고 와서, 밥 사고 차 사고 또 한 시간 홀로 돌아가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 터인데요. 다 같이 먹고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상근자들의 시시콜콜한 고자질이며 썰렁개그를 함께 나누는 그 시간이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지 모른답니다.
올 봄 언젠가, 바로 그 점심시간을 통해 지금 시민행동이 꿈꾸고 있는 '함께하는 시민학교'의 첫 구상이 나왔어요. 창립 후 10년을 정리하며 새롭게 태어나려하는 시민행동의 꿈, 일상/지역/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보다 사려깊게 연결해가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다음 10년의 비전을 향한 첫 걸음으로 말이에요.

그 후 어느새 6개월이 훌쩍 지났네요. 10월의 첫 날 필리의 연구실에 모인 우리는 이런저런 고민과 방황을 거쳐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시민학교의 공개직전 기획안을 드디어 마무리하였답니다. 그간 필리는 사무처의 더딘 고민에도 참 오래 기다려주고 기획 과정에도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주셨던터라 이날 만남에서 그리 긴 이야기는 필요치 않았어요. 마치 드라마의 열린 결말처럼, 시민학교의 기획을 포함한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재창립 과정도 앞으로 계속 고쳐지고 덧붙여지겠지만 우리가 담고자 하는 꿈은 변치 않을거라는 믿음도 공유하였고요.

평생을 바친 교직 못지않게, 사실 빛도 명예도 잘 드러나지 않는 시민운동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실천하는 필리가 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새로운 걸음 내딛습니다. 언제나 지금처럼, 어쩌면 처음 마음 그대로 항상 함께였으면 좋겠습니다.
ps. 연구실 한 켠에 걸려있던 캐리커쳐가 너무 멋져서 시민학교용 프로필로 쓰겠다며 액자 채 냉큼 떼어왔습니다. 사진 잘 찍어두었으니 다시 예쁘게 새 액자에 넣어 돌려드리려 해요. 이 그림 그리신 분 천재^^
필리는 이필상 님의 영문이름이자 시민행동에서의 애칭입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1999년 창립 당시부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상임대표, 공동대표를 거쳐 현재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이며, 곧 모습을 드러낼 <함께하는 시민학교>의 대표를 맡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