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념있는 시민학교의 마지막 강연은 지난 12월 8일 저녁, 녹색평론 편집인 김종철 선생님과 함께 열렸습니다. 이날 강연은 멀리서 한걸음에 달려오신 녹색평론 독자들에서부터 시민행동 회원, 성미산 마을 분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서왕진(환경정의연구소 부소장)님의 소개로 시작된 이날 강연은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근대국가'와 '녹색'이라는 두 단어를 놓고 우리 삶의 여러가지 측면을 짚으며 이어져 나갔습니다. 국가/지배자의 논리를 벗어나 이웃과의 '환대와 우정'의 논리로 삶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메시지 속에, 실은 이렇게 단순히 정리할 수 없는 인생의 많은 이야기들이 녹아있었습니다. 아래 상자안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시민학교에서 정리한 강연 주요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하단의 짧은 영상과 사진으로도 이날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M_강연 주요 내용 (클릭)|접기|
지배자들의 논리가 아닌, 환대와 우정의 논리로 싸웁시다.
김종철 (2009.12.8) 강연요약
어떤 사람이 고요하게 바닷가에 앉아서 낚시를 하는데, 누가 지나가다가 왜 비효율적으로 낚시대 하나 놓고 그러고 있냐고 합니다. 그물을 써라 그럼 한 그물에 수십, 수백마리가 잡힌다고 합니다. 수백마리 잡아서 뭐하냐고 물어보면, 그걸로 돈 벌어서 큰 배를 사서 원양어업을 하라고 합니다. 원양어업 해서 뭐하냐고 물어보면, 큰 수산회사를 만들어 재벌이 되라고 합니다. 그래서 재벌이 되면 뭐가 좋냐고 물어보니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편하게 사는 게 뭐냐고 하니까 고요한 바다에 와서 한가로이 낚시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는 게 이렇습니다. 늘 뭔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덟살 짜리가 학원을 다섯 개 다닙니다. 그 아이 소망이 죽고 싶다는 겁니다. 늘 뭔가를 준비하다가 한 번도 행복해지지 못한 채 끝납니다. 인생은 지금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농민들에게 애들 대학보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겸업할 필요도 없고 비닐하우스도 할 필요 없고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원 보내고 대학등록금 대려면 1년 내내 찌들려도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애들은 부모를 보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탈출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식이면 천년을 가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국가대표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목에 피가 나게 설명하면 학생들 하는 말이, “선생님 그러면 우리 나라는 누가 지키는데요?” 합니다. “야, 네가 국방부 장관이냐? 쫄따구는 제발 쫄따구답게 생각하자”고 대답합니다. 가수들 텔레비전 나와서 맨날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합니다. 전부 자기가 지도자이고, 국민대표입니다. 그러니까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말이 옳은데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듣고 안 따라준다고 생각하니 불편합니다.
경향신문 11월 9일자에 지난 정부에서 총리를 했던 한명숙씨의 강연 기사가 나왔는데, 강연 말미에 누군가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간적인 분인 건 인정하지만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5백만 농민이 3백5십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한-칠레 FTA와 한미 FTA는 농민들에게는 재앙이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정권 5년간 농민이 1백5십만명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이 기사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시로 밀려와서 일자리라도 잡았겠습니까?
한명숙씨가 죄송하다, 역부족이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고 대답합니다. 실제 국정을 운영해보면, 한국의 경제적 지위를 수치상으로 상승시키지 않고 가시적으로 후퇴시킨다면 권력이 그 자리에서 무너지는 상황이 온다는 겁니다. 당장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현 구도 아래서는 농업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국정운영 내에서 전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한명숙 씨를 잘 모르지만 굉장히 솔직하거나 무지한 분입니다.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알면 절대로 이런 얘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네가 다시 집권해도 절대 우리 농업은 살아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 안 하거나 못했을 뿐이지,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만수 씨가 이명박 정부 첫 국무회의 때 농업이란 말 더 이상 쓰지 말자, 농산업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농업이 갖고 있는 본질적 성격이 뭔지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한국이 산업국가 중에서 식량자립도가 제일 낮은 나라인데, 이것이 당장 얼마나 위험한 사태를 불러일으킬지에 대해 생각도 안 해본 무책임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진보신당도 믿지 않습니다. 진보신당이 집권하더라도 약간 더 농업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을 것입니다. 진보신당에 좋은 사람 많습니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꿈 깨라, 당신들 절대 권력 못 잡는다, 권력 잡는 순간 한명숙이 된다고 했습니다. 국가권력을 장악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근대국가는 농업, 환경, 녹색적 가치와는 상극입니다. 근대국가는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해야 하고, 권력을 확대해야 합니다. 경제적, 군사적 위상을 끊임없이 높여야 합니다. 경제성장 그만두고 문화국가 만들자고 하면 마누라도 참모도 안 찍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농업은 비교우위가 아니라 비교열위 산업입니다. 농업은 기본적으로 소농입니다. 근대국가의 틀에 근본적인 도전을 하지 않는 한 녹색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우선 무기를 버려야 하고, 군대를 없애고,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욕망을 국가 목표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냥 연대해서 가난하게 공생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설사 무력침공은 당하지 않더라도 국제적 위상이 떨어집니다. 그걸 참을 수 있는 국민이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민의식이 얼마나 강합니까?
농촌공동체가 붕괴되는 건 우리 삶의 기초 중에 기초가 사라졌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나라 노동운동이 벽에 부딪친 결정적인 이유도 농촌이 부서졌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노동자들이 갈 곳이 없다는 걸 자본가들이 알고 있습니다. 농촌이라는 자립의 근거지가 사라진다면, 노동자들이 공장에 매여 있는 한 아무리 투쟁의지가 강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본가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립성을 잃으면 그날로 노예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도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집도 내 손으로 못 짓고, 내 손으로 야채도 길러본 적이 없고, 재봉틀도 못 만지고 반찬도 못합니다. 아이들 기저귀 차는데 왜 전문가가 필요합니까? 어디 가정대 교수가 나와서 기저귀에 무슨 균이 있고 어떻게 매야 하고 몇 시간마다 갈아야 되고 얘기합니다. 인도의 여성들은 아기들 기저귀도 안 채우고 맨궁둥이로 업거나 안고 다니다가 오줌을 누입니다. 그걸 신기해한 미국인이 “애가 오줌을 누려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오히려 “그걸 왜 모르냐?”고 합니다.
경동시장을 가 보세요. 생약시장으로는 세계 최대일 것입니다. 거기 노점 할머니들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관절염으로 병원 찾아가면 노화현상이니 대책이 없다고 합니다. 경동시장 가면 겨우살이라는 식물 두 달만 삶아잡수면 펄펄 난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의과대학 제도, 한의과대학 제도 같은 제도화된 국가 체제의 의료기관들이 경동시장이 갖는 가치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대중들도 덩달아 경동시장은 어설프고 전근대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폄하합니다. 하지만 최첨단 의료과학 연구소에서 신약이라고 뽑아내는 것들이 사실 민간처방에서 힌트를 얻어 교활하게도 에센스만 뽑아낸 것입니다. 오히려 에센스만 뽑아서 때로 부작용이 있습니다. 식물 전체를 먹어야 부작용이 없습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가야 가치있는 걸 배운다고 생각하는데, 학교에서 뭘 배웁니까? 노래 잘하고 친구 많고 인간성 좋고 시도 잘 쓰는 애가 수학만 못하면 농땡이 되는 곳입니다. 아이들 다 망가뜨리는 곳입니다. 우리 힘으로 자식들 얼마든 잘 키울 수 있습니다. 먹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직접 길러도 되고 기르는 사람과 친구해도 됩니다.
건강 문제도 우정의 네트워크만 있으면 다 됩니다. 실제 기술이 없다 해도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면 의사가 치료해주는 것보도 효과가 큽니다. 정부 돈 받는 사회복지사가 의무적으로 와서 약주고 좀 어떠냐고 묻는 건 소용없습니다. 제일 기분 나쁜 게 국가복지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늘 꿈꾸는 게 북구처럼 세금을 많이 내서 전국민 복지시스템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병상 수를 많이 늘려서 수가를 싸게 하고 될 수 있는 한 무료 진료를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제도화된 병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오히려 민중이 가진 기본적 생존능력을 말살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무한한 능력을 전문가들, 자본주의, 산업, 국가체제 때문에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놓고서 우리가 무슨 자율성이 있습니까?
녹색평론이 말하는 가치는 자치와 자립, 가능하면 자급입니다. 물론 혼자서는 안 됩니다. 내가 쌀을 다 만들 수 없습니다. 우정과 연대에 기반해야 합니다. 예수 말 그대로 이웃 사랑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이웃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본래 유대 율법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때 이웃은 유대인끼리의 이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 경계를 무너뜨린 것이 예수의 혁명입니다. 사실 유대인 제사장도 지나가고 율법사도 지나갔는데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규정을 따른 것도 아닌데 그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자유 의사로 다가갔습니다. 이것이 자유인입니다. 이웃은 내 자유에 의해 다가가는 존재입니다. 그럴 때 그 이웃이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집권적 국가가 아닙니다. 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양식 기준으로는 봉건 사회입니다. 아마 중앙집권적 국가였다면 미국이나 소련이 이미 점령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이 사회에는 법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가진 생활상의 규칙이 환대와 복수입니다. 복수라고 하면 으스스한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복수란 교환입니다. 이빨 하나 부러지면 반드시 이빨 하나만 뽑아갑니다. 근대국가의 재판이란 게 얼마나 야만적이고 불공정합니까? 대마초 피웠다고 3년씩 감옥 살립니다. 그리고 중요한 게 환대입니다. 낯선 사람이 오면 온 마음을 다해 대접합니다. 우리도 전통사회에서 그랬습니다. 소련과 미국이 한 짓은 민중의 환대 문화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와 근대국가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친절하게 우정을 맺고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자본주의와 근대국가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철저하게 무능해지고 불행해집니다. 수십년간 준비해도 준비가 끝이 안나는 시스템입니다. 예전 중세에는 중간조직이 많았지만 이제는 다 없어지고 국가와 개인이 1대 1로 맞세워져 일방적으로 당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핵가족 하나 남았는데 그것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대 문화가 중요합니다. 내 이웃끼리 공동체를 형성해서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지배자들의 논리로는 우리가 이길 수 없습니다. 지배자들이 꼼짝 못하는 환대와 우정의 논리로 싸워야 합니다.
_M#]
이렇게 해서 2009년 가을 첫 걸음을 시작한 개념있는 시민학교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강연을 선뜻 맡아주시고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신 네 분 선생님과 참석해주신 180여명의 참가자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2010년에도 좋은 모습으로 더 많은 분들과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서왕진(환경정의연구소 부소장)님의 소개로 시작된 이날 강연은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근대국가'와 '녹색'이라는 두 단어를 놓고 우리 삶의 여러가지 측면을 짚으며 이어져 나갔습니다. 국가/지배자의 논리를 벗어나 이웃과의 '환대와 우정'의 논리로 삶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메시지 속에, 실은 이렇게 단순히 정리할 수 없는 인생의 많은 이야기들이 녹아있었습니다. 아래 상자안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시민학교에서 정리한 강연 주요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하단의 짧은 영상과 사진으로도 이날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김종철 (2009.12.8) 강연요약
어떤 사람이 고요하게 바닷가에 앉아서 낚시를 하는데, 누가 지나가다가 왜 비효율적으로 낚시대 하나 놓고 그러고 있냐고 합니다. 그물을 써라 그럼 한 그물에 수십, 수백마리가 잡힌다고 합니다. 수백마리 잡아서 뭐하냐고 물어보면, 그걸로 돈 벌어서 큰 배를 사서 원양어업을 하라고 합니다. 원양어업 해서 뭐하냐고 물어보면, 큰 수산회사를 만들어 재벌이 되라고 합니다. 그래서 재벌이 되면 뭐가 좋냐고 물어보니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편하게 사는 게 뭐냐고 하니까 고요한 바다에 와서 한가로이 낚시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는 게 이렇습니다. 늘 뭔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덟살 짜리가 학원을 다섯 개 다닙니다. 그 아이 소망이 죽고 싶다는 겁니다. 늘 뭔가를 준비하다가 한 번도 행복해지지 못한 채 끝납니다. 인생은 지금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농민들에게 애들 대학보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겸업할 필요도 없고 비닐하우스도 할 필요 없고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원 보내고 대학등록금 대려면 1년 내내 찌들려도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애들은 부모를 보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탈출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식이면 천년을 가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국가대표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목에 피가 나게 설명하면 학생들 하는 말이, “선생님 그러면 우리 나라는 누가 지키는데요?” 합니다. “야, 네가 국방부 장관이냐? 쫄따구는 제발 쫄따구답게 생각하자”고 대답합니다. 가수들 텔레비전 나와서 맨날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합니다. 전부 자기가 지도자이고, 국민대표입니다. 그러니까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말이 옳은데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듣고 안 따라준다고 생각하니 불편합니다.
경향신문 11월 9일자에 지난 정부에서 총리를 했던 한명숙씨의 강연 기사가 나왔는데, 강연 말미에 누군가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간적인 분인 건 인정하지만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5백만 농민이 3백5십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한-칠레 FTA와 한미 FTA는 농민들에게는 재앙이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정권 5년간 농민이 1백5십만명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이 기사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시로 밀려와서 일자리라도 잡았겠습니까?
한명숙씨가 죄송하다, 역부족이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고 대답합니다. 실제 국정을 운영해보면, 한국의 경제적 지위를 수치상으로 상승시키지 않고 가시적으로 후퇴시킨다면 권력이 그 자리에서 무너지는 상황이 온다는 겁니다. 당장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현 구도 아래서는 농업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국정운영 내에서 전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한명숙 씨를 잘 모르지만 굉장히 솔직하거나 무지한 분입니다.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알면 절대로 이런 얘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네가 다시 집권해도 절대 우리 농업은 살아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 안 하거나 못했을 뿐이지,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만수 씨가 이명박 정부 첫 국무회의 때 농업이란 말 더 이상 쓰지 말자, 농산업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농업이 갖고 있는 본질적 성격이 뭔지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한국이 산업국가 중에서 식량자립도가 제일 낮은 나라인데, 이것이 당장 얼마나 위험한 사태를 불러일으킬지에 대해 생각도 안 해본 무책임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진보신당도 믿지 않습니다. 진보신당이 집권하더라도 약간 더 농업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을 것입니다. 진보신당에 좋은 사람 많습니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꿈 깨라, 당신들 절대 권력 못 잡는다, 권력 잡는 순간 한명숙이 된다고 했습니다. 국가권력을 장악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근대국가는 농업, 환경, 녹색적 가치와는 상극입니다. 근대국가는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해야 하고, 권력을 확대해야 합니다. 경제적, 군사적 위상을 끊임없이 높여야 합니다. 경제성장 그만두고 문화국가 만들자고 하면 마누라도 참모도 안 찍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농업은 비교우위가 아니라 비교열위 산업입니다. 농업은 기본적으로 소농입니다. 근대국가의 틀에 근본적인 도전을 하지 않는 한 녹색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우선 무기를 버려야 하고, 군대를 없애고,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욕망을 국가 목표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냥 연대해서 가난하게 공생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설사 무력침공은 당하지 않더라도 국제적 위상이 떨어집니다. 그걸 참을 수 있는 국민이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민의식이 얼마나 강합니까?
농촌공동체가 붕괴되는 건 우리 삶의 기초 중에 기초가 사라졌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나라 노동운동이 벽에 부딪친 결정적인 이유도 농촌이 부서졌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노동자들이 갈 곳이 없다는 걸 자본가들이 알고 있습니다. 농촌이라는 자립의 근거지가 사라진다면, 노동자들이 공장에 매여 있는 한 아무리 투쟁의지가 강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본가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립성을 잃으면 그날로 노예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도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집도 내 손으로 못 짓고, 내 손으로 야채도 길러본 적이 없고, 재봉틀도 못 만지고 반찬도 못합니다. 아이들 기저귀 차는데 왜 전문가가 필요합니까? 어디 가정대 교수가 나와서 기저귀에 무슨 균이 있고 어떻게 매야 하고 몇 시간마다 갈아야 되고 얘기합니다. 인도의 여성들은 아기들 기저귀도 안 채우고 맨궁둥이로 업거나 안고 다니다가 오줌을 누입니다. 그걸 신기해한 미국인이 “애가 오줌을 누려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오히려 “그걸 왜 모르냐?”고 합니다.
경동시장을 가 보세요. 생약시장으로는 세계 최대일 것입니다. 거기 노점 할머니들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관절염으로 병원 찾아가면 노화현상이니 대책이 없다고 합니다. 경동시장 가면 겨우살이라는 식물 두 달만 삶아잡수면 펄펄 난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의과대학 제도, 한의과대학 제도 같은 제도화된 국가 체제의 의료기관들이 경동시장이 갖는 가치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대중들도 덩달아 경동시장은 어설프고 전근대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폄하합니다. 하지만 최첨단 의료과학 연구소에서 신약이라고 뽑아내는 것들이 사실 민간처방에서 힌트를 얻어 교활하게도 에센스만 뽑아낸 것입니다. 오히려 에센스만 뽑아서 때로 부작용이 있습니다. 식물 전체를 먹어야 부작용이 없습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가야 가치있는 걸 배운다고 생각하는데, 학교에서 뭘 배웁니까? 노래 잘하고 친구 많고 인간성 좋고 시도 잘 쓰는 애가 수학만 못하면 농땡이 되는 곳입니다. 아이들 다 망가뜨리는 곳입니다. 우리 힘으로 자식들 얼마든 잘 키울 수 있습니다. 먹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직접 길러도 되고 기르는 사람과 친구해도 됩니다.
건강 문제도 우정의 네트워크만 있으면 다 됩니다. 실제 기술이 없다 해도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면 의사가 치료해주는 것보도 효과가 큽니다. 정부 돈 받는 사회복지사가 의무적으로 와서 약주고 좀 어떠냐고 묻는 건 소용없습니다. 제일 기분 나쁜 게 국가복지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늘 꿈꾸는 게 북구처럼 세금을 많이 내서 전국민 복지시스템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병상 수를 많이 늘려서 수가를 싸게 하고 될 수 있는 한 무료 진료를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제도화된 병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오히려 민중이 가진 기본적 생존능력을 말살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무한한 능력을 전문가들, 자본주의, 산업, 국가체제 때문에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놓고서 우리가 무슨 자율성이 있습니까?
녹색평론이 말하는 가치는 자치와 자립, 가능하면 자급입니다. 물론 혼자서는 안 됩니다. 내가 쌀을 다 만들 수 없습니다. 우정과 연대에 기반해야 합니다. 예수 말 그대로 이웃 사랑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이웃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본래 유대 율법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때 이웃은 유대인끼리의 이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 경계를 무너뜨린 것이 예수의 혁명입니다. 사실 유대인 제사장도 지나가고 율법사도 지나갔는데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규정을 따른 것도 아닌데 그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자유 의사로 다가갔습니다. 이것이 자유인입니다. 이웃은 내 자유에 의해 다가가는 존재입니다. 그럴 때 그 이웃이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집권적 국가가 아닙니다. 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양식 기준으로는 봉건 사회입니다. 아마 중앙집권적 국가였다면 미국이나 소련이 이미 점령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이 사회에는 법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가진 생활상의 규칙이 환대와 복수입니다. 복수라고 하면 으스스한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복수란 교환입니다. 이빨 하나 부러지면 반드시 이빨 하나만 뽑아갑니다. 근대국가의 재판이란 게 얼마나 야만적이고 불공정합니까? 대마초 피웠다고 3년씩 감옥 살립니다. 그리고 중요한 게 환대입니다. 낯선 사람이 오면 온 마음을 다해 대접합니다. 우리도 전통사회에서 그랬습니다. 소련과 미국이 한 짓은 민중의 환대 문화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와 근대국가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친절하게 우정을 맺고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자본주의와 근대국가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철저하게 무능해지고 불행해집니다. 수십년간 준비해도 준비가 끝이 안나는 시스템입니다. 예전 중세에는 중간조직이 많았지만 이제는 다 없어지고 국가와 개인이 1대 1로 맞세워져 일방적으로 당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핵가족 하나 남았는데 그것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대 문화가 중요합니다. 내 이웃끼리 공동체를 형성해서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지배자들의 논리로는 우리가 이길 수 없습니다. 지배자들이 꼼짝 못하는 환대와 우정의 논리로 싸워야 합니다.
_M#]
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7650
이렇게 해서 2009년 가을 첫 걸음을 시작한 개념있는 시민학교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강연을 선뜻 맡아주시고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신 네 분 선생님과 참석해주신 180여명의 참가자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2010년에도 좋은 모습으로 더 많은 분들과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