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는 없는 헌법 이야기, <헌법 다시보기> 출판

2007-02-27

시민행동이 지난 2005년 1년간에 걸쳐 진행한 행사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21세기 우리 사회, 우리 나라가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지를 헌법을 통해 이야기한 책입니다. 최근 87년 헌법의 한계나 개헌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여기저기서 나옵니다만, 그 어떤 논의보다도 풍부한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헌법 교과서와 참고서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새로운 헌법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아래는 출판을 맡은 에서 낸 책 소개입니다.


헌법 다시 보기 - 87년헌법, 무엇이 문제인가
함께하는 시민행동 엮음/ 신국판 428면/ 값 20,000원

지난 1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담화 발표 당시의 충격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헌법개정 추진지원단’이 정부에 따로 마련되는 등 헌법 개정안 발의를 위한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중이며, 3월경에는 개정안이 발의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 발의 후에는 국회 동의, 국민투표 등의 절차가 남아 있어, 대선을 앞둔 정국에서 그 정치적 파장은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된다.

문제는 시민사회의 뜨뜻미지근한 대응이다. 한미FTA의 졸속 추진에 강력하게 대응해온 시민사회가 헌법 개정에 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 전반에 ‘헌법 개정’이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자조적인 인식이 널리 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헌법’이란 시민과 동떨어진 정치적 이슈일 뿐인가? 87년헌법이라 불리는 현행 헌법이 지닌 문제에 시민이 개입할 여지는 없는가? 『헌법 다시 보기』는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헌법 개정 논의를 시민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취지하에 법학자는 물론, 평화․여성․환경․문화 등 지금까지 헌법 논의에서 소외된 분야의 학자와 사회운동가 들이 참여한 ‘헌법 다시 보기 기획위원회’를 만들어 수차례의 토론을 거친 끝에 이 책을 엮었다. 이 책에는 정치적 개헌이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개헌을 위한 시민사회의 진지한 고민(하승창)이 녹아들어 있다.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87년헌법

흔히 민주화 투쟁의 산물로 평가받는 87년헌법이지만 그 개정 당시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법의 제정 과정에서 87년투쟁을 이끈 시민사회는 철저히 배제되었으며, 권위주의 구체제의 정당대표들만이 헌법 제정의 주체가 되었다(박명림).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87년헌법은 이후 전개되는 폭발적인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고, 지구화․정보화․생태화 등 목전에 놓인 21세기의 과제에도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홍윤기). 더욱이 지난 2004년 터진 대통령 탄핵사태는 정치의 실패를 헌법에 전가하는 정치의 사법화 경향의 극단을 보여주면서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원포인트 개헌’으로 정치적 게임에 몰두할 게 아니라 시민사회의 요구가 반영된 헌법 구상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이에 대해 박명림은 민주헌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 연대기구 형성(제1단계), 국회에 시민대표로 구성된 민주헌법연구회 설치(2단계), 국회에서의 최종 헌법화(3단계) 등의 3단계 절차를 거쳐 민주헌법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홍윤기는 빠르게 진보하는 시민사회의 위상을 헌정체제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


헌법 논의의 지평 확장

이와 같은 큰 틀 아래 필자들은 기존의 헌법 담론에 맞서는 새로운 담론 모색에 주력한다. 한상희는 경제권력이 국가권력을 압도하고,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대세가 되는 상황에서의 헌법의 역할에 주목한다. 이 시대에 헌법 담론은 무한경쟁에 내몰린 개인에게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되돌려주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절대적 재산권 보장만을 목적으로 삼는 헌법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자율성의 관점으로 헌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최배근 역시 우리 헌법이 ‘경쟁’을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들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화된 시대에 걸맞게 협력의 원리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발상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정희진은 젠더의 입장에서 헌법을 다시 본다. 필자는 헌법의 주체가 되는 ‘국가’는 남성․비장애인․이성애자의 국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헌법에서 여성과 모성은 보호받아야 할 측은한 존재로 그려지며, 인간을 양성으로 구분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을 배척한다. 특히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시민을 국민에서 배제함으로써 여성과 군면제자를 2등 국민으로 깎아내린다. 필자는 이 모든 차별적인 조항은 개정되어야 하며, 시민사회는 헌법을 담론투쟁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시민사회가 공공의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시민의회제도를 헌법에 도입하자는 김상준과 오현철의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


87년헌법의 대안 모색

정태호는 현행 헌법에서 독소 조항으로 남아 있는 기본권 조항들을 바로잡으면서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독자적인 기본권으로 명시되어야 할 조항들을 추가한다. 가령 생명권은그 중요성이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독자적 기본권으로 명시될 필요가 있으며, 정보기술의 발전을 고려하여 개인정보 자결권과 정보의 자유권(알 권리)이 새로이 헌법에 도입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아울러 국제결혼의 증가 등의 추세를 반영하여 언어․피부색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 불로소득의 환수, 사회적 약자의 지위 보장 등 좀더 실질적인 조항들이 헌법에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전 파병으로 더욱 관심이 높아진 평화주의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이경주는 각국 헌법에서의 평화주의의 원리를 비교 성찰하면서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수준을 넘어 전쟁을 하지 않도록 국가권력을 견제할 권리, 즉 평화적 생존권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이대훈은 평화주의에 인권적으로 접근할 필요를 역설하면서 전쟁, 무력사용, 국가의 폭력에 대한 입장을 인권론 차원에서 명확하게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깁수갑은 헌법에서의 문화국가 조항에 통일 시대를 대비한 좀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야 함을 주장하면서 문화적 자율성을 실현하기 위한 헌법의 역할을 강조한다. 박신의는 문화에 대한 이념이 헌법에 부재함을 지적하면서 헌법 조항을 문화적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최윤철은 환경권의 헌법적 의미를 상세하게 되짚으면서 환경권이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 국가목표조항으로 설정되어야 하며 특히 권리 회복을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