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당장의 발의보다는 장기적인 논의의 틀을 준비해야

2007-03-16

어제 정부 헌법개정추진지원단에서 개최한 헌법개정시안에 대한 공개토론회에 시민행동 오관영 사무처장이 패널로 참석했습니다. 오관영 처장은 이 자리에서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대안 없이 조급하게 이루어지는 현재의 개헌 움직임이 제대로 된 개헌논의를 위축시킬 수 있으며, 당장의 발의보다는 미래지향적 논의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역설했습니다. 다음은 이 날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


당장의 발의보다는 장기적인 논의의 틀을 준비해야

○ 개헌은 시민들의 기본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 행정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 지문날인제도 등 시민사회에 증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들이 헌법재판관에 결정되는 것에서 보듯이 헌법은 국가정책 및 시민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

- 개헌 논의는 우리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여야 함. 따라서 시민들의 기본권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함. 권력구조의 개편 역시 그런 기본 방향에 입각해서 이루어져야 함.

○ 발표된 개헌 시안의 문제점
- ‘대통령 연임제’와 ‘대통령-국회의원 동시선거’라는 방식은 장점만이 아니라 단점도 존재하는 제도임. 만일 시행하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다른 대안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함. 따라서 원포인트 개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

- 현직대통령의 재선 시도에 수반될 불법 정치자금, 관건 선거 등의 부작용을 가볍게 봐서는 안됨.

- 대통령-국회의원 동시선거를 통한 비용 감소 효과 및 정치 과정의 효율화는 긍정적이나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분립의 정신 또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함. 하나의 정파가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하고, 특히 국회의석의 2/3 이상을 확보하게 되면, 자의적 개헌도 가능해짐. 지난 지방선거 결과를 볼 때 동시선거에서의 싹쓸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음. 시안에서 밝힌 한 달 시차의 선거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며, 최소한 중간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임.

- 대통령 유고시의 임기일치 방식 역시 개헌의 목적과는 거리가 있음. 최악의 경우 1년 남짓한 임기만을 가지는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선거를 치러야 함. 이는 개헌이 목표로 하는 정치비용 감소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임시방편이라는 인상이 짙음.

○ 개헌 추진 방식의 문제점
- ‘원포인트 개헌’을 하고 이후에 포괄적인 개헌논의를 하자는 2단계 개헌론은, (1)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하는 헌법개정을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접근한다는 점, (2) 그동안 논의되어온 개헌논의의 지평을 좁혀버렸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음.

- 2단계 개헌론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대통령 연임제’와 ‘대통령-국회의원 동시선거’라는 방식은 위에서 살펴봤듯이, 장․단점이 공존하는 제도임. 만일 시행하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다른 대안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함. 따라서 ‘원’포인트 개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

- 현재의 정치상황상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함. 헌법개정에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임. 공약 실천이라는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무시한 일방적 개헌 발의는 이후의 포괄적, 미래지향적 개헌 논의를 더욱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재고되어야 할 일임.

- “참여”란 “의사형성단계부터 참여를 보장”하는 것임. 개헌은 발의 이전에 오랜 기간에 걸친 전국민적인 논의와 소통을 필요로 함. 불과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이나 시민사회, 국민과의 소통 없이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며, 일방적 제안 후 이제부터 논의하자는 것은 전혀 ‘참여’지향적이지 않음.

○ 당장의 발의보다는 장기적인 틀을 준비해야 한다.
-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개헌의 내용상, 과정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장기적․포괄적 개헌의 필요성은 분명함. 바람직한 헌법개정의 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는 아님.

- 개헌의 세부적인 내용을 문제삼아 논의하기보다는 시민사회의 합의를 통한 장기적․포괄적 개헌이 가능하기 위한 “개헌 논의의 큰 틀과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함.

1) 조건없는 개헌발의 유보
- 그간의 개헌 논의를 통해 국회 및 시민사회에서의 개헌논의를 활성화한 점은 유의미했으나, 현재의 개헌 시안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정치적 상황 또한 개헌 발의가 제 의미를 다하기 어려운 조건임. 또한 원포인트 개헌 자체가 그동안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이루어져 온 개헌논의(87년 헌법을 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하려고 하는 논의)의 폭을 협소하게 하는 것임.

- (1) 현재 추진중인 개헌 발의는 조건없이 유보하고 (2) 87년 헌법의 미래지향적 개선을 위해 포괄적인 개헌논의가 가능하도록 방향전환을 할 때, 그간의 개헌 논의의 긍정적 측면이 살아날 것임.

2) 다음 정권(18대 국회)에서의 개헌을 전제로 개헌논의
- 실제 제도정치권내에서의 개헌논의는 다음 국회(18대 국회)에서나 가능할 것임.

- 이번 정권(17대 국회)내에서는 “이번 국회 내에 개헌발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시민사회나 학계의 참여하에 개헌에 관한 기초조사 및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이를 보고서 형태로 다음 국회18대 국회)에 넘겨주는 것이 바람직함. 이를 위한 정파중립적 연구조사기구를 국회에 둘 수 있을 것임.

- 충분한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판단되면, 다음 국회(18대국회) 출범 직후에 개헌에 관한 국민적 의견수렴을 위한 틀을 구성하여 포괄적․장기적 개헌을 위한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할 것임. 이 틀에서는 권력구조 뿐 아니라 기본권의 확대, 국회 및 사법개혁,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의제에 입각해 87년 헌법의 운용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개헌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