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봉숙 의원과 함께하는 피스라디오 캠페인 인터뷰 -
손봉숙 의원과 함께하는 피스라디오 캠페인
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에서 진행하는 내 이름을 새긴 피스라디오 캠페인(이하 ‘피스라디오 캠페인’)에 안치환과 이문식에 이어 손봉숙 국회의원이 가디언엔젤로 참여한다. 가디언엔젤은 캠페인의 홍보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으로 일종의 홍보대사의 역할이다.
지난 6일 손봉숙 의원실에서 마웅저(시민행동 인턴, 버마민주화 운동가)의 진행으로 손봉숙 의원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이 날 인터뷰에서 손봉숙 의원은 과거 동티모르에 UN 선거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당시 동티모르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에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버마 또한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곧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또, 라디오를 통해 세계 시민들의 격려나 동참의 목소리를 버마 민중들이나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이 듣는 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날 손봉숙 의원은 세계와 소통할 수 있고, 나 혼자가 아니라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피스라디오 캠페인을 통해서 사람들의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캠페인은 12월 말까지 블로그(www.peaceradio.kr)와 몇 차례 거리캠페인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며, 손봉숙 의원의 인터뷰영상도 캠페인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첨부1 : 손봉숙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1부.
첨부2 : 내 이름을 새긴 피스 라디오 캠페인 기획서 1부 끝.
공동대표 박헌권 윤영진 지현
-# 첨부1 : 손봉숙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
일시 : 2007/12/06 오전 11시
장소 :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손봉숙 의원실
인터뷰: 시민행동
마웅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이화여대 대학교에서 근무도 하시고 박사학위로 받으시고 강사로도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손봉숙 네 , 이대에서 정치학 공부했고,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석사하고, 다시 이대 와서 한 10년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그 테마 중 하나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잘 적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강의를 했어요.
마웅저 유학을 간 게 80년, 81년 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5.18 즈음에 외국에 계신건가요?
손봉숙 제가 처음 유학을 간 건 1971년이었고, 하와이대에서 77년도에 귀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신시절에 한국에 없었습니다. 제가 80년, 81년 프린스턴 대학에 유학을 갈 당시에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났어요. 그 때 5`18 때문에 발걸음이 잘 안 떨어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사건을 접하면서 한 나라가 얼마나 잘되고 있는지 아닌지 발전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그것이 한나라 국민의 어깨를 얼마만큼 짓누를 수 있는가를 체험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사태를 국내에서는 언론통제로 상황을 잘 몰랐던 상태였고, 제가 통일원 자료조사 담당관으로 근무하면서 유학을 간 거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들어오는 조총련계 신문이나 국내에서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자세한 정보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고민은 네가 미국에 가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니 한국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학 가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고,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질문해 줘서 고마워요.
마웅저 5.18당시 외신에서 관련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나요?
손봉숙 그 당시 5.18 전후에서 외신에서는 이미 보도가 나간 상태였습니다. 제가 유학을 간 건 8월말이었고요. 이미 보도가 나간 후였습니다. 5.18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그치지 않은 상태였고 신군부독재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의기소침한 채로 공부하고 돌아온 거죠.
마웅저 그 당시 손봉숙 의원님께서 느끼시기에 군부독재가 만들어놓은 국영방송과 외신과의 차이점이 있었나요?
손봉숙 그 때 저는 다른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 즉 불온서적이라고 불리는 일반인이 못 보는 서적을 다 읽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언론의 통제가 많았기 때문에 국내에서 하는 우리 방송의 내용과 불온서적의 내용은 많이 달랐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죠. 특히 조총련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보면서 과연 이랬을까 외신이 과장된 게 아닐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실제로 오히려 외신이 과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한 쪽은 너무 은폐하려고 하고 한쪽은 너무 적나라한 현실을 묘사했기 때문에 어떤 게 진실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는 헷갈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많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외신의 보도가 상당부분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군부로서는 새로운 정권을 잡기 위해 언론 통제를 했을 것이고 국민들은 어느 정도의 통제인지 감도는 없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아마 조금은 숨겼어도 그 정도는 숨겼을까 하는 정도였던 거죠.
언론에 보도가 된다는 것은 사실로 알려지는 것이고 그 자체가 진실인데, 어떤 신문을 보는가에 따라서 진실의 내용이 달라지는 상황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는 자유롭게 다양한 언론을 접하고 그럴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서 선택에 따른 판단이 가능하지만, 모든 언론이 통제되었을 경우엔 진실을 모를 것입니다.
마웅저 그럼 본격적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버마 피스라디오 캠페인에 동참을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손봉숙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쟁취를 위한 투쟁이라고 할까.. 그게 대한민국만큼 치열한 나라가 없을 거고 우리나라만큼 비싼 대가를 치루면서 민주화를 위해 오래 투쟁하고 그 결과로 성공적인 민주화를 달성해 누리고 있는 나라도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민주주의가 얼마만큼 실질적인 달성 했느냐는 다른 문제이겠지만요. 그래도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확보했다고 봅니다.
1987년 민주항쟁 때, 18년간의 박정희 군부독재와 또 다시 새로운 군부독재체제를 겪으면서 거리로 뛰어나온 사람이 그냥 노동자, 농민, 학생이었다면 과연 성공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소위 화이트칼라라는 넥타이 부대까지 동참했는데, 그 사람들이 동참했다는 것은 온 국민이 동참했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성공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87년 민주화 이후 체육관 대통령 시절을 마감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열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적어도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절차상의 민주주의를 확보했습니다. 예를 들면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옮겨올 때, 문민정부에서 정권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처음으로 정권에 수평적으로 교체될 때, 그냥 1~2% 정도의 차이로 정권이 교체되었거든요.
그 정도의 차이로 정권이 교체될 때엔 절차적인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 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도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확보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컨텐츠를 잘 살려내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살려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동티모르 공화국을 설립하는 과정에 깊이 개입한 경험이 있습니다. 1999년 UN으로부터 팩스를 받았는데,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할 것인지 인도네시아의 자치령으로 둘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하는데 선거관리 위원으로 동티모르에 갈 수 있을 지를 묻는 팩스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동티모르라는 나라에 대해 아주 깊은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성들이나 어린이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에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고요. 그래서 급히 검색해 보니 동티모르라는 나라는 포르투갈에 470년 동안 식민지를 겪었고, 독립이 되자마자 인도네시아의 식민지가 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티모르는 24년간 독립운동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인구의 4/1이 죽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사실 동티모르에서 사실 여성들의 인권은 말할 수 없을 만큼이었습니다.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강간은 물론이고 살해당하고.. 하여튼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여성은 동을 하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기꺼이 가게 되었죠.
99년에 동티모르에서 2달 정도 있었는데 총소리 안 나고 자는 날이 없었습니다. 자는데 탕탕하고 총소리 나고 아침에 일어나면 독립운동가 누구 집이 불탔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그런데 그 당시 동티모르에서 놀란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독립에 대한 희망만은 절대 포기 하지 않는 국민들이었습니다.
UN에서 선거 준비를 하고, 투표 하루 전날 주민들이 상황이 상황인 만큼 위험하다고 다들 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모두들 투표할 사람이 없다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거 날 새벽 4시, 5시 즈음에 밖에서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들려서 나가 보니 400명, 500명 떼를 지어서 투표를 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모든 동티모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구스마오 초대 대통령은 “두려워하지 말고 투표해라. 전 세계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우리의 모습을 보고 전 세계인들은 용감하고 위대하다는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이런 라디오 인터뷰를 했고, 그게 전 동티모르인들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제가 감독을 하기 위해 투표장을 나가니까 아침 6시에 이미 3천명 전원이 나와 있었습니다. 3000명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땡볕 아래서 2시~3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무더위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업고 있는 한 아주머니한테 다가가서 이 더운데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너무 뜨겁지 않느냐고 묻자, 그 아주머니께서는 “ 24년을 기다렸다. 왜 하루를 못 기다리겠느냐.”고 했어요. 그 장소에 있던 분 중에 사람들이 다 투표하고 난 다음 맨 마지막에 투표하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들이 투표하는 모습만 봐도 즐거워서 마지막에 투표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눈물이 낫습니다.
이런 열망은 아마 버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국민들이 치른 엄청난 대가와 용기, 열망을 봤기 때문에 버마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 시점에서 지금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겠지만 언젠가는 그 터널이 열리고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던 경험을 전달해 주고 싶었기 때문에 동참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잠시만 눈물 좀 닦고.. 전 동티모르 이야기만 나오면 웁니다.
마웅저 의원님께서 버마 민주화에 관련한 활동도 하신 걸로 아는데,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손봉숙 생각만큼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는 않습니다. 고작해야 결의문 채택 정도 일 수도 있고.. 국가라는 것은 공식적인 외교 라인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독재라도 일단 그 나라의 정권으로 인정해야 되는 상황이고.. 우리가 외교관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고, 개인적으로 버마의 민주화에 대해 공감하는 의원들이 모여서 성명서 발표라든지, 지원의사 발표 이런 정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회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고요. 하지만 그렇게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고, 버마 민중들의 항쟁의 진행상황에 따라 동참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연하 의원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동티모르에서도 라디오 방송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의원님이 생각하시기에 라디오가 버마에서 의미하는 바가 있을까요?
손봉숙 물론입니다. 피스라디오 몇 대를 저도 보낼 생각인데요. 라디오라는 것이 우리 같이 다매체 시대에선 아무것도 아니지만 정말 좋은 통신 수단이 없는 곳에선 큰 의미이고 중요할 것입니다.
혹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서 고생하는데 왜 나 혼자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라디오를 통한 연결고리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운동을 하는 사람에겐 큰 힘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88년 이후 지금까지 버마-태국 국경지대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자신이 존경하는 민주화 운동의 지도층의 목소리나, 민중의 의지나 행동, 실천 등의 조그만 소직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힘이고 더 나아가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매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작은 실개천이 모여 큰 강이 되고 바다고 되듯이 말입니다. 바로 그렇게 모여 바다가 되는 순간이 민주화를 쟁취하는 순간일 것이고, TV도 인터넷도 없는 상황에서 그 매개 수단으로 라디오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960년에 미디어 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했다면 민주화가 빨랐을지도 모릅니다. 80년도에 그렇게 국민들에게 정보를 은폐할 수 있었다는 것도 미디어가 그 만큼 취약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수단이 생겨서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국민들이 버마 시위를 보고 무언의 지원부터 실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티모르 때도 전 세계 시민들이 먼저 동티모르 상황을 고발하고 나아가 UN을 압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버마의 난민들은 우리만 이러나 하겠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알고, 그러다 어느 계기가 되면 또 다른 방법으로 지원할 수단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고립된 상황에서 그 지원의 내용을 라디오를 통해 안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피스라디오 운동은 시민행동이 한다는 것이 좋고(웃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희망을 주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웅저 한국의 80년과 버마의 88년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혹시 이번 버마 항쟁을 보면서 마음 쓰이신 부분이 있으셨나요?
손봉숙 이번 버마 항쟁이 한국의 87년 항쟁과 같은 폭발력은 아닌 것 같아 안타깝지만, 처음에 말했듯 우리나라의 87년에 화이트칼라가 조율하지 않았으면 결정적인 순간이 오지 않았을 겁니다. 버마도 조만간 어떤 그런 결정적인 계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힘을 좀 더 축적해서 운동을 키워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버마에서 부러운 것은 전 버마인들과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아웅산 수지와 같은 좋은 지도자가 있기 때문에, 그런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친다면 원하는 것을 얻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해주세요. 이런 일을 한다는 것도 버마의 민주화에 대한 세계인들의 동참과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희망을 잃지 마시고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
마웅저 마지막으로 캠페인에 동참을 부탁하는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손봉숙 뭐.. 이미 앞에서 다 이야기 했는데.. 다시 할라니까..(웃음) 라디오라는 것이 고립된 상황에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나 혼자가 아니라 동료가 있다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피스라디오를.. 비싼 돈도 아니고 한 대에 오천원이라고 하니까 한 대, 두 대, 혹은 열 대, 스무 대, 이렇게 보내줘서 그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웅저 이것은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정치인으로서 보는 평화와 학자로서 보는 평화가 차이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손봉숙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민운동도 하고 책도 쓰고 있는 입장에서.. 비폭력 운동에 관심이 많은데요. 관련 책을 쓰기도 했고.. 학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왜 평화가 소중하고 비폭력이 중요한 운동 수단 인가하는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설득하는 것이라면, 시민운동에서는 이론을 받아 행동으로 옮기는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마웅저 그렇다면 혹시 학자로서 버마에 있는 학생들에게 전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손봉숙 대학생은 꿈이 많기도 하고 가장 불안정한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앞날에 대해 많은 고민과 방황을 하는 때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시기에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데는 있는 데로 본다는 것과 보는 대로 본다는 명제가 있습니다.
제가 파리, 로마와 같은 데를 여행을 하게 되면 관광을 갈 때는 관광지만 보고 다른 것은 안 보게 됩니다. 간판 문화를 보기 위해 여행을 하면 간판만 보이게 되고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있는 대로 본다기보다는 보이는 대로 보고 있을 것입니다. 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지만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공평하고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기르는 것입니다.
많이 듣고, 읽고, 세계와 항상 소통해서 군부독재에 어렵게 공부하고 있을 텐데 안주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열린 자세로 버마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세대들이 바람직함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투쟁을 하시길 바랍니다. 또, 적어도 어려운 한 나라의 한 젊은이라면 개인의 사적 이익에만 안주하지 않는 가치관과 안목,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버마를 민주화 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시길 바랍니다.
마웅저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웃음)
손봉숙 고마워요. (웃음)
마웅저 너무 시간을 뺏는 것 같습니다.
손봉숙 괜찮아요. 다른 때 같으면 길게 이야기하면 대부분 편집되는데 여긴 그럴 염려 없이 이야기해도 돼서 맘 편히 이야기 하고 있어요. (웃음)
마웅저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아웅산 수지 여사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좀 부탁드릴게요.
손봉숙 아시아의 여성 지도자로 서로 만나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특히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명심하시고, 수지 여사 뒤에 정말 수많은 의식 있는 행동하는 세계시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힘내시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버마 민중들에게 힘을 주는 그런 존경받는 지도자로 우뚝 서시길 바랍니다. (끝)
-# 첨부2 : 내 이름을 새긴 피스 라디오 캠페인 기획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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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새긴 피스(PEACE) 라디오
버마(미얀마) 국경지대에 평화의 라디오를 보내요!
www.peace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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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시민행동 ( www.action.or.kr,
02-921-4709)
캠페인 담당: 이미희 ( action@peaceradio.kr)
◎ 내 이름을 새긴 피스(PEACE) 라디오 캠페인이란?
기나긴 군부독재 아래에서도 민주화의 열망을 품고 있는 버마(미얀마) 국민들은 지난 2007년 9월 약 10여년 만에 또다시 대규모민주화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군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시위는 현재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한국의 시민들이 버마의 민주화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은 정보가 소통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내 이름을 새긴 피스(PEACE)라디오 캠페인은 이렇듯 버마 국내의 열악한 상황을 피해 국경지대로 나와 있는 많은 버마 시민들이 민주화의 메시지가 담긴 라디오채널들을 들을 수 있도록 라디오 기기를 보내는 캠페인입니다.
◎ 왜 라디오인가
하나. 버마의 민주화와 한국
지난 2007년 9월 연일 TV에서는 버마의 민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그것을 진압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방송했습니다. 기나긴 독재의 세월을 지나쳐온 우리에게는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소식들이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군사 독재 체제를 넘어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가고 있는 반면 조금 먼 우리나라 밖 버마에서는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먼저 민주화 운동을 경험하고 이루어낸 한국이 버마의 민주화의 군부의 억압과 폭력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버마 민중들에게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자 합니다.
둘, 지금 버마는..
현재 버마는 '샤프론 혁명'이라 불리던 9월 대규모 민중 시위는 소강상태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하지만 군부의 유혈 진압에 따른 강요된 침묵일 뿐이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통치 중인 군부는 사망자는 10명이라며 이제는 평온을 찾았다고 주장하지만, 외신들은 3000명에서 6000명 정도가 구금되었으며, 구금자에 대한 고문 등 잔혹한 인권탄압 소식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망, 구금 등 안타까운 소식들은 계속되고 있고, 시위에 참여했던 버마 민중들의 상처와 분노는 깊어 어떤 식으로든 시위는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요된 침묵 속에서도 버마인들은 여전히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셋, 라디오와 버마 그리고 우리..
현 재 시민행동 인턴 중인 버마 민주화 운동가인 마웅저씨의 말에 따르면 현재 버마에서는 버마 민중들이 국내`외부의 소식을 들을 수단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70년대 정도의 상황과 비슷하게 라디오가 있는 가구도 얼마 되지 않고 군부의 통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정보의 부족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경험에 미루어 볼 때, 정보가 독재정권에 통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면 라디오는 버마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피스라디오가 보급되면 버마 국경지대의 많은 버마 민중들이 해외에서 송출되고 있는 민주화운동가들의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 방송들을 듣고 버마가 하루 빨리 군부 독재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버마의 아픔을 덜어주는 한 방법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 라디오는 어떻게 쓰여지나
우리가 보내는 라디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여질 지 궁금하시죠? 이번 캠페인을 통해 모금된 라디오 기금은 버마-태국 국경지대인태국의 메솟 지역으로 전달됩니다. 메솟 지역에는 국경을 넘은 많은 버마 시민들이 살고 있으며, 민주화운동가들과 평화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의 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곳입니다. 피스라디오는 그러한 단체들 중 신뢰할 수 있는 약 10여개 단체를 통해 배포될 예정입니다. 현재 함께하는 시민행동 인턴활동가인 마웅저씨가 현지와 직접 연락하며 진행과정을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보내는 라디오는 실제 사용되고 있는 기종으로 현지에서 직접 구입할 예정입니다. 최고 10,000원 이내에서 품질과 활용성을 고려해 제품을 선택하고 주문할 것이며, 이 작업은 현재 태국 방콕에 있는 국제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ForumAsia)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국경지대의 버마 시민들은 피스라디오를 받아 DVB(DemocraticVoice of Burma), RFA(Radio Free Asia), BBC, VOA(Voice of America) 등 버마어를 포함 다국어로 방송되고 있는 채널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네개의 채널은 모두 해외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버마 내의 정보원을 통해 버마 소식과 민주화의 메시지 등을 담아 버마어로 방송되고 있으며, 버마 국내와 국경지대 모두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현지에서 라디오를 전달받아 배포할 단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Karen Youth Organization (KYO)
2. All Kachin Students and Youth Union(AKSYU)
3. All Arakan Students' and Youths' Congress (AASYC)
4. Kayan New Generation Youth (KNGY)
5. Mon Youth Progressive Organization (MYPO)
6. Zomi Students and Youth Organization (ZSYO)
7. Palaung Youth Network Group(PYNG)
8. Tavoyan Youth Organization (TYO)
9. Democratic Party for a New Society (DPNS)
10. All Burma Student's Democratic Front (ABSDF)
11.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Liberated Area, Youth)(NLD_LA, Youth)
12. BLSO(Burma Labour Solidarity Organization)
13. YCOWO(Yaung Chi Oo Workers Organization)
14. JACBA(Joint Action Committee for Burma Affairs)
15. HRDP(Human Resourse Development Program)
※현지코디: 포럼아시아(Forum Asia)
각 단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소개와 활동내용 등은 블로그를 통해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 구체적인 모금계획
모금기간: 2007. 11. 14 ~ 12. 31 (라디오 전달은 2008년 1월경)
모금계획
- 버마가디언: 2,000명 (가디언 엔젤 500명)
- 라디오기금: 최대 1천만 원 (가디언 1인당 5,000원 예상)
지출계획
- 라디오 1대 가격: 최소 3,000원 ~ 최대 9,000원 (태국 현지 시세를 조사한 내용으로, 성능과 편의성을 고려해 기기 선정 예정)
- 전체 라디오 수량: 단가에 따라 최소 1,000대에서 최대 3,000대 사이
- 라디오 구입비용 외 지출: 홍보 및 라디오 전달과정 포함 최대 5%~10% 사이 (인건비 지출없음)
모금장소
- 피스라디오 블로그 www.peaceradio.kr
* 추가예정
◎ 함께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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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라디오캠페인은 위 안내와 같이 5,000원 이상의 라디오 기금을 후원하고 등록해주시는 분들을 버마 '가디언'(Guardian:수호자)이라고 부릅니다. 참여해주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버마의 평화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이롭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소중한 수호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모금과 홍보 등을 함께 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캠페인에 참여하는 분들을 '가디언 엔젤'(Guardian Angel: 수호천사)이라고 부릅니다. 10,000원 이상의 라디오기금을 후원하신 후 주소를 알려주시면 가디언 엔젤 신분증^^인 액정클리너와 홍보용 자료를 보내드립니다. 주변 분들께 캠페인을 소개하셔서 자신의 후원금을 포함해 30,000원 이상을 모금해주시면 됩니다. 자신의 후원금만으로 30,000원 이상을 보내주신 분도 물론 가디언 엔젤로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가디언과 가디언 엔젤을 굳이 나누는 것은 후원금액의 가치를 달리매기거나 참여하는 마음의 크기를 달리 판단하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피스라디오 캠페인에 참여하는 나의 실천, 그것이 크든 작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겠다는 기대를 담고 있을 따름입니다. 가디언 엔젤에게 보내드리는 액정클리너와 홍보용 자료에도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디언이든 가디언 엔젤이든, 함께 해 주시는 모든 분들과 그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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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표 지현 윤영진 박헌권 / 가입문의
02-921-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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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봉숙 의원과 함께하는 피스라디오 캠페인 인터뷰 -
손봉숙 의원과 함께하는 피스라디오 캠페인
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에서 진행하는 내 이름을 새긴 피스라디오 캠페인(이하 ‘피스라디오 캠페인’)에 안치환과 이문식에 이어 손봉숙 국회의원이 가디언엔젤로 참여한다. 가디언엔젤은 캠페인의 홍보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으로 일종의 홍보대사의 역할이다.
지난 6일 손봉숙 의원실에서 마웅저(시민행동 인턴, 버마민주화 운동가)의 진행으로 손봉숙 의원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이 날 인터뷰에서 손봉숙 의원은 과거 동티모르에 UN 선거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당시 동티모르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에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버마 또한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곧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또, 라디오를 통해 세계 시민들의 격려나 동참의 목소리를 버마 민중들이나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이 듣는 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날 손봉숙 의원은 세계와 소통할 수 있고, 나 혼자가 아니라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피스라디오 캠페인을 통해서 사람들의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캠페인은 12월 말까지 블로그(www.peaceradio.kr)와 몇 차례 거리캠페인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며, 손봉숙 의원의 인터뷰영상도 캠페인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첨부1 : 손봉숙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1부.
첨부2 : 내 이름을 새긴 피스 라디오 캠페인 기획서 1부 끝.
공동대표 박헌권 윤영진 지현
-# 첨부1 : 손봉숙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
일시 : 2007/12/06 오전 11시
장소 :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손봉숙 의원실
인터뷰: 시민행동
마웅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이화여대 대학교에서 근무도 하시고 박사학위로 받으시고 강사로도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손봉숙 네 , 이대에서 정치학 공부했고,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석사하고, 다시 이대 와서 한 10년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그 테마 중 하나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잘 적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강의를 했어요.
마웅저 유학을 간 게 80년, 81년 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5.18 즈음에 외국에 계신건가요?
손봉숙 제가 처음 유학을 간 건 1971년이었고, 하와이대에서 77년도에 귀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신시절에 한국에 없었습니다. 제가 80년, 81년 프린스턴 대학에 유학을 갈 당시에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났어요. 그 때 5`18 때문에 발걸음이 잘 안 떨어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사건을 접하면서 한 나라가 얼마나 잘되고 있는지 아닌지 발전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그것이 한나라 국민의 어깨를 얼마만큼 짓누를 수 있는가를 체험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사태를 국내에서는 언론통제로 상황을 잘 몰랐던 상태였고, 제가 통일원 자료조사 담당관으로 근무하면서 유학을 간 거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들어오는 조총련계 신문이나 국내에서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자세한 정보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고민은 네가 미국에 가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니 한국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학 가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고,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질문해 줘서 고마워요.
마웅저 5.18당시 외신에서 관련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나요?
손봉숙 그 당시 5.18 전후에서 외신에서는 이미 보도가 나간 상태였습니다. 제가 유학을 간 건 8월말이었고요. 이미 보도가 나간 후였습니다. 5.18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그치지 않은 상태였고 신군부독재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의기소침한 채로 공부하고 돌아온 거죠.
마웅저 그 당시 손봉숙 의원님께서 느끼시기에 군부독재가 만들어놓은 국영방송과 외신과의 차이점이 있었나요?
손봉숙 그 때 저는 다른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 즉 불온서적이라고 불리는 일반인이 못 보는 서적을 다 읽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언론의 통제가 많았기 때문에 국내에서 하는 우리 방송의 내용과 불온서적의 내용은 많이 달랐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죠. 특히 조총련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보면서 과연 이랬을까 외신이 과장된 게 아닐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실제로 오히려 외신이 과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한 쪽은 너무 은폐하려고 하고 한쪽은 너무 적나라한 현실을 묘사했기 때문에 어떤 게 진실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는 헷갈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많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외신의 보도가 상당부분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군부로서는 새로운 정권을 잡기 위해 언론 통제를 했을 것이고 국민들은 어느 정도의 통제인지 감도는 없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아마 조금은 숨겼어도 그 정도는 숨겼을까 하는 정도였던 거죠.
언론에 보도가 된다는 것은 사실로 알려지는 것이고 그 자체가 진실인데, 어떤 신문을 보는가에 따라서 진실의 내용이 달라지는 상황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는 자유롭게 다양한 언론을 접하고 그럴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서 선택에 따른 판단이 가능하지만, 모든 언론이 통제되었을 경우엔 진실을 모를 것입니다.
마웅저 그럼 본격적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버마 피스라디오 캠페인에 동참을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손봉숙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쟁취를 위한 투쟁이라고 할까.. 그게 대한민국만큼 치열한 나라가 없을 거고 우리나라만큼 비싼 대가를 치루면서 민주화를 위해 오래 투쟁하고 그 결과로 성공적인 민주화를 달성해 누리고 있는 나라도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민주주의가 얼마만큼 실질적인 달성 했느냐는 다른 문제이겠지만요. 그래도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확보했다고 봅니다.
1987년 민주항쟁 때, 18년간의 박정희 군부독재와 또 다시 새로운 군부독재체제를 겪으면서 거리로 뛰어나온 사람이 그냥 노동자, 농민, 학생이었다면 과연 성공했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소위 화이트칼라라는 넥타이 부대까지 동참했는데, 그 사람들이 동참했다는 것은 온 국민이 동참했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성공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87년 민주화 이후 체육관 대통령 시절을 마감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열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적어도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절차상의 민주주의를 확보했습니다. 예를 들면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옮겨올 때, 문민정부에서 정권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처음으로 정권에 수평적으로 교체될 때, 그냥 1~2% 정도의 차이로 정권이 교체되었거든요.
그 정도의 차이로 정권이 교체될 때엔 절차적인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 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도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확보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컨텐츠를 잘 살려내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살려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동티모르 공화국을 설립하는 과정에 깊이 개입한 경험이 있습니다. 1999년 UN으로부터 팩스를 받았는데,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할 것인지 인도네시아의 자치령으로 둘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하는데 선거관리 위원으로 동티모르에 갈 수 있을 지를 묻는 팩스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동티모르라는 나라에 대해 아주 깊은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성들이나 어린이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에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고요. 그래서 급히 검색해 보니 동티모르라는 나라는 포르투갈에 470년 동안 식민지를 겪었고, 독립이 되자마자 인도네시아의 식민지가 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티모르는 24년간 독립운동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인구의 4/1이 죽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사실 동티모르에서 사실 여성들의 인권은 말할 수 없을 만큼이었습니다.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강간은 물론이고 살해당하고.. 하여튼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여성은 동을 하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기꺼이 가게 되었죠.
99년에 동티모르에서 2달 정도 있었는데 총소리 안 나고 자는 날이 없었습니다. 자는데 탕탕하고 총소리 나고 아침에 일어나면 독립운동가 누구 집이 불탔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그런데 그 당시 동티모르에서 놀란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독립에 대한 희망만은 절대 포기 하지 않는 국민들이었습니다.
UN에서 선거 준비를 하고, 투표 하루 전날 주민들이 상황이 상황인 만큼 위험하다고 다들 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모두들 투표할 사람이 없다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거 날 새벽 4시, 5시 즈음에 밖에서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들려서 나가 보니 400명, 500명 떼를 지어서 투표를 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모든 동티모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구스마오 초대 대통령은 “두려워하지 말고 투표해라. 전 세계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우리의 모습을 보고 전 세계인들은 용감하고 위대하다는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이런 라디오 인터뷰를 했고, 그게 전 동티모르인들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제가 감독을 하기 위해 투표장을 나가니까 아침 6시에 이미 3천명 전원이 나와 있었습니다. 3000명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땡볕 아래서 2시~3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무더위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업고 있는 한 아주머니한테 다가가서 이 더운데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너무 뜨겁지 않느냐고 묻자, 그 아주머니께서는 “ 24년을 기다렸다. 왜 하루를 못 기다리겠느냐.”고 했어요. 그 장소에 있던 분 중에 사람들이 다 투표하고 난 다음 맨 마지막에 투표하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들이 투표하는 모습만 봐도 즐거워서 마지막에 투표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눈물이 낫습니다.
이런 열망은 아마 버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국민들이 치른 엄청난 대가와 용기, 열망을 봤기 때문에 버마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 시점에서 지금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겠지만 언젠가는 그 터널이 열리고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던 경험을 전달해 주고 싶었기 때문에 동참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잠시만 눈물 좀 닦고.. 전 동티모르 이야기만 나오면 웁니다.
마웅저 의원님께서 버마 민주화에 관련한 활동도 하신 걸로 아는데,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손봉숙 생각만큼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는 않습니다. 고작해야 결의문 채택 정도 일 수도 있고.. 국가라는 것은 공식적인 외교 라인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독재라도 일단 그 나라의 정권으로 인정해야 되는 상황이고.. 우리가 외교관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가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고, 개인적으로 버마의 민주화에 대해 공감하는 의원들이 모여서 성명서 발표라든지, 지원의사 발표 이런 정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회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고요. 하지만 그렇게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고, 버마 민중들의 항쟁의 진행상황에 따라 동참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연하 의원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동티모르에서도 라디오 방송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의원님이 생각하시기에 라디오가 버마에서 의미하는 바가 있을까요?
손봉숙 물론입니다. 피스라디오 몇 대를 저도 보낼 생각인데요. 라디오라는 것이 우리 같이 다매체 시대에선 아무것도 아니지만 정말 좋은 통신 수단이 없는 곳에선 큰 의미이고 중요할 것입니다.
혹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서 고생하는데 왜 나 혼자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라디오를 통한 연결고리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운동을 하는 사람에겐 큰 힘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88년 이후 지금까지 버마-태국 국경지대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자신이 존경하는 민주화 운동의 지도층의 목소리나, 민중의 의지나 행동, 실천 등의 조그만 소직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힘이고 더 나아가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매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작은 실개천이 모여 큰 강이 되고 바다고 되듯이 말입니다. 바로 그렇게 모여 바다가 되는 순간이 민주화를 쟁취하는 순간일 것이고, TV도 인터넷도 없는 상황에서 그 매개 수단으로 라디오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960년에 미디어 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했다면 민주화가 빨랐을지도 모릅니다. 80년도에 그렇게 국민들에게 정보를 은폐할 수 있었다는 것도 미디어가 그 만큼 취약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수단이 생겨서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국민들이 버마 시위를 보고 무언의 지원부터 실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티모르 때도 전 세계 시민들이 먼저 동티모르 상황을 고발하고 나아가 UN을 압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버마의 난민들은 우리만 이러나 하겠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알고, 그러다 어느 계기가 되면 또 다른 방법으로 지원할 수단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고립된 상황에서 그 지원의 내용을 라디오를 통해 안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피스라디오 운동은 시민행동이 한다는 것이 좋고(웃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희망을 주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웅저 한국의 80년과 버마의 88년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혹시 이번 버마 항쟁을 보면서 마음 쓰이신 부분이 있으셨나요?
손봉숙 이번 버마 항쟁이 한국의 87년 항쟁과 같은 폭발력은 아닌 것 같아 안타깝지만, 처음에 말했듯 우리나라의 87년에 화이트칼라가 조율하지 않았으면 결정적인 순간이 오지 않았을 겁니다. 버마도 조만간 어떤 그런 결정적인 계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힘을 좀 더 축적해서 운동을 키워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버마에서 부러운 것은 전 버마인들과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아웅산 수지와 같은 좋은 지도자가 있기 때문에, 그런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친다면 원하는 것을 얻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해주세요. 이런 일을 한다는 것도 버마의 민주화에 대한 세계인들의 동참과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희망을 잃지 마시고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
마웅저 마지막으로 캠페인에 동참을 부탁하는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손봉숙 뭐.. 이미 앞에서 다 이야기 했는데.. 다시 할라니까..(웃음) 라디오라는 것이 고립된 상황에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나 혼자가 아니라 동료가 있다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피스라디오를.. 비싼 돈도 아니고 한 대에 오천원이라고 하니까 한 대, 두 대, 혹은 열 대, 스무 대, 이렇게 보내줘서 그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웅저 이것은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정치인으로서 보는 평화와 학자로서 보는 평화가 차이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손봉숙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민운동도 하고 책도 쓰고 있는 입장에서.. 비폭력 운동에 관심이 많은데요. 관련 책을 쓰기도 했고.. 학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왜 평화가 소중하고 비폭력이 중요한 운동 수단 인가하는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설득하는 것이라면, 시민운동에서는 이론을 받아 행동으로 옮기는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마웅저 그렇다면 혹시 학자로서 버마에 있는 학생들에게 전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손봉숙 대학생은 꿈이 많기도 하고 가장 불안정한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앞날에 대해 많은 고민과 방황을 하는 때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시기에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데는 있는 데로 본다는 것과 보는 대로 본다는 명제가 있습니다.
제가 파리, 로마와 같은 데를 여행을 하게 되면 관광을 갈 때는 관광지만 보고 다른 것은 안 보게 됩니다. 간판 문화를 보기 위해 여행을 하면 간판만 보이게 되고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있는 대로 본다기보다는 보이는 대로 보고 있을 것입니다. 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지만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공평하고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기르는 것입니다.
많이 듣고, 읽고, 세계와 항상 소통해서 군부독재에 어렵게 공부하고 있을 텐데 안주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열린 자세로 버마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세대들이 바람직함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투쟁을 하시길 바랍니다. 또, 적어도 어려운 한 나라의 한 젊은이라면 개인의 사적 이익에만 안주하지 않는 가치관과 안목,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버마를 민주화 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시길 바랍니다.
마웅저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웃음)
손봉숙 고마워요. (웃음)
마웅저 너무 시간을 뺏는 것 같습니다.
손봉숙 괜찮아요. 다른 때 같으면 길게 이야기하면 대부분 편집되는데 여긴 그럴 염려 없이 이야기해도 돼서 맘 편히 이야기 하고 있어요. (웃음)
마웅저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아웅산 수지 여사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좀 부탁드릴게요.
손봉숙 아시아의 여성 지도자로 서로 만나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특히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명심하시고, 수지 여사 뒤에 정말 수많은 의식 있는 행동하는 세계시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힘내시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버마 민중들에게 힘을 주는 그런 존경받는 지도자로 우뚝 서시길 바랍니다. (끝)
-# 첨부2 : 내 이름을 새긴 피스 라디오 캠페인 기획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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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새긴 피스(PEACE) 라디오
버마(미얀마) 국경지대에 평화의 라디오를 보내요!
www.peace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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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시민행동 ( www.action.or.kr, 02-921-4709)
캠페인 담당: 이미희 ( action@peaceradio.kr)
◎ 내 이름을 새긴 피스(PEACE) 라디오 캠페인이란?
기나긴 군부독재 아래에서도 민주화의 열망을 품고 있는 버마(미얀마) 국민들은 지난 2007년 9월 약 10여년 만에 또다시 대규모민주화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군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시위는 현재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한국의 시민들이 버마의 민주화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은 정보가 소통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내 이름을 새긴 피스(PEACE)라디오 캠페인은 이렇듯 버마 국내의 열악한 상황을 피해 국경지대로 나와 있는 많은 버마 시민들이 민주화의 메시지가 담긴 라디오채널들을 들을 수 있도록 라디오 기기를 보내는 캠페인입니다.
◎ 왜 라디오인가
하나. 버마의 민주화와 한국
지난 2007년 9월 연일 TV에서는 버마의 민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그것을 진압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방송했습니다. 기나긴 독재의 세월을 지나쳐온 우리에게는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소식들이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군사 독재 체제를 넘어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가고 있는 반면 조금 먼 우리나라 밖 버마에서는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먼저 민주화 운동을 경험하고 이루어낸 한국이 버마의 민주화의 군부의 억압과 폭력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버마 민중들에게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자 합니다.
둘, 지금 버마는..
현재 버마는 '샤프론 혁명'이라 불리던 9월 대규모 민중 시위는 소강상태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하지만 군부의 유혈 진압에 따른 강요된 침묵일 뿐이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통치 중인 군부는 사망자는 10명이라며 이제는 평온을 찾았다고 주장하지만, 외신들은 3000명에서 6000명 정도가 구금되었으며, 구금자에 대한 고문 등 잔혹한 인권탄압 소식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망, 구금 등 안타까운 소식들은 계속되고 있고, 시위에 참여했던 버마 민중들의 상처와 분노는 깊어 어떤 식으로든 시위는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요된 침묵 속에서도 버마인들은 여전히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셋, 라디오와 버마 그리고 우리..
현 재 시민행동 인턴 중인 버마 민주화 운동가인 마웅저씨의 말에 따르면 현재 버마에서는 버마 민중들이 국내`외부의 소식을 들을 수단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70년대 정도의 상황과 비슷하게 라디오가 있는 가구도 얼마 되지 않고 군부의 통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정보의 부족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경험에 미루어 볼 때, 정보가 독재정권에 통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면 라디오는 버마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피스라디오가 보급되면 버마 국경지대의 많은 버마 민중들이 해외에서 송출되고 있는 민주화운동가들의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 방송들을 듣고 버마가 하루 빨리 군부 독재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버마의 아픔을 덜어주는 한 방법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 라디오는 어떻게 쓰여지나
우리가 보내는 라디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여질 지 궁금하시죠? 이번 캠페인을 통해 모금된 라디오 기금은 버마-태국 국경지대인태국의 메솟 지역으로 전달됩니다. 메솟 지역에는 국경을 넘은 많은 버마 시민들이 살고 있으며, 민주화운동가들과 평화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의 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곳입니다. 피스라디오는 그러한 단체들 중 신뢰할 수 있는 약 10여개 단체를 통해 배포될 예정입니다. 현재 함께하는 시민행동 인턴활동가인 마웅저씨가 현지와 직접 연락하며 진행과정을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보내는 라디오는 실제 사용되고 있는 기종으로 현지에서 직접 구입할 예정입니다. 최고 10,000원 이내에서 품질과 활용성을 고려해 제품을 선택하고 주문할 것이며, 이 작업은 현재 태국 방콕에 있는 국제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ForumAsia)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국경지대의 버마 시민들은 피스라디오를 받아 DVB(DemocraticVoice of Burma), RFA(Radio Free Asia), BBC, VOA(Voice of America) 등 버마어를 포함 다국어로 방송되고 있는 채널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네개의 채널은 모두 해외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버마 내의 정보원을 통해 버마 소식과 민주화의 메시지 등을 담아 버마어로 방송되고 있으며, 버마 국내와 국경지대 모두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현지에서 라디오를 전달받아 배포할 단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Karen Youth Organization (KYO)
2. All Kachin Students and Youth Union(AKSYU)
3. All Arakan Students' and Youths' Congress (AASYC)
4. Kayan New Generation Youth (KNGY)
5. Mon Youth Progressive Organization (MYPO)
6. Zomi Students and Youth Organization (ZSYO)
7. Palaung Youth Network Group(PYNG)
8. Tavoyan Youth Organization (TYO)
9. Democratic Party for a New Society (DPNS)
10. All Burma Student's Democratic Front (ABSDF)
11.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Liberated Area, Youth)(NLD_LA, Youth)
12. BLSO(Burma Labour Solidarity Organization)
13. YCOWO(Yaung Chi Oo Workers Organization)
14. JACBA(Joint Action Committee for Burma Affairs)
15. HRDP(Human Resourse Development Program)
※현지코디: 포럼아시아(Forum Asia)
각 단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소개와 활동내용 등은 블로그를 통해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 구체적인 모금계획
모금기간: 2007. 11. 14 ~ 12. 31 (라디오 전달은 2008년 1월경)
모금계획
- 버마가디언: 2,000명 (가디언 엔젤 500명)
- 라디오기금: 최대 1천만 원 (가디언 1인당 5,000원 예상)
지출계획
- 라디오 1대 가격: 최소 3,000원 ~ 최대 9,000원 (태국 현지 시세를 조사한 내용으로, 성능과 편의성을 고려해 기기 선정 예정)
- 전체 라디오 수량: 단가에 따라 최소 1,000대에서 최대 3,000대 사이
- 라디오 구입비용 외 지출: 홍보 및 라디오 전달과정 포함 최대 5%~10% 사이 (인건비 지출없음)
모금장소
- 피스라디오 블로그 www.peaceradio.kr
* 추가예정
◎ 함께하는 방법
피스라디오를 보내는 버마 가디언(Burma Guardian)이 되어주세요. 5,000원 이상 라디오 기금을 입금하고 이름과 연락처를 등록하시면 됩니다. (* 가디언 엔젤은 10,000원 이상) 라디오를 보낼 때 각 라디오의 포장에 가디언들의 이니셜을 새길 예정입니다. 더불어 이 캠페인 뿐 아니라 버마와 관련한 소식들을 지속적으로 전달해 드립니다.
가디언? 가디언 엔젤? 자세히 알기
피스라디오캠페인은 위 안내와 같이 5,000원 이상의 라디오 기금을 후원하고 등록해주시는 분들을 버마 '가디언'(Guardian:수호자)이라고 부릅니다. 참여해주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버마의 평화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이롭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소중한 수호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모금과 홍보 등을 함께 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캠페인에 참여하는 분들을 '가디언 엔젤'(Guardian Angel: 수호천사)이라고 부릅니다. 10,000원 이상의 라디오기금을 후원하신 후 주소를 알려주시면 가디언 엔젤 신분증^^인 액정클리너와 홍보용 자료를 보내드립니다. 주변 분들께 캠페인을 소개하셔서 자신의 후원금을 포함해 30,000원 이상을 모금해주시면 됩니다. 자신의 후원금만으로 30,000원 이상을 보내주신 분도 물론 가디언 엔젤로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가디언과 가디언 엔젤을 굳이 나누는 것은 후원금액의 가치를 달리매기거나 참여하는 마음의 크기를 달리 판단하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피스라디오 캠페인에 참여하는 나의 실천, 그것이 크든 작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겠다는 기대를 담고 있을 따름입니다. 가디언 엔젤에게 보내드리는 액정클리너와 홍보용 자료에도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디언이든 가디언 엔젤이든, 함께 해 주시는 모든 분들과 그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1) 가디언 (Guardian)
5,000원 이상의 피스라디오 기금을 후원하고 등록하신 분
본인 의사에 따라 라디오 포장에 이니셜을 새깁니다.
캠페인 소식과 버마 관련 소식 메일을 받습니다.
2) 가디언 엔젤 (Guardian Angel)
10,000원 이상의 피스라디오 기금을 후원하고 등록하신 분
본인 의사에 따라 라디오 포장에 이니셜을 새깁니다.
가디언 엔젤 신분증(액정클리너)과 홍보자료를 받습니다.
자신의 후원금을 포함해 30,000원 이상을 모금합니다.
버마 가디언이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그렇다면 아래 안내에 따라 등록해주세요.
먼저, 피스라디오 기금 입금하기
가디언: 5,000원 이상
가디언 엔젤: 10,000원 이상
계좌: 110-228-482259 신한은행 / 예금주:오관영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
온라인결제: www.peaceradio.kr
그리고, 내 이름과 연락처 등록하기
가디언
- 이름(필수): 실명/비실명 상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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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을 보내실 곳:
블로그: www.preacradio.kr
이메일: action@peace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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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표 지현 윤영진 박헌권 / 가입문의 02-921-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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