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슈퍼 추경, 급하다고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건 아니다.

2009-03-24

급하다고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건 아니다.
추경예산안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 어디에 얼마나 필요한지 실태 파악도 없이 대충 편성
- 예산 누수 막을 구체적 대책 없이 거액 조기 집행
- 기존 예산낭비사업 축소 등 예산 효율성 제고 대책 언급 없음
- 국민의 위기감 이용하여 긴급하지 않은 당초 추진사업 예산 증액
- 부자 감세 등으로 세수 줄여놓고 세수감소 보전에 거액 편성
- 종부세 감세 등으로 지방재정 흔들어놓고 지방채 인수 등 사후약방문


오늘(2009. 3. 24.) 발표된 정부 추경예산안은 극심한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긴급대책임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방만하고 비효율적인데다 국민의 위기감을 이용하여 긴급성이 떨어지는 당초 추진사업을 끼워넣어 거액을 추가 편성하는 등 이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안이다.
따라서 가급적 국회 제출 전에 전면 재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회 역시 예산안 심의 시 엄격한 검증을 통해 국민 세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이번 추경예산안은 실태 파악이 부실한 상태에서 탁상공론으로 결정되었다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정부는 긴급지원이 필요한 빈곤층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추정치도 제시하지 않은 채 ‘생활보호 사각지대 240만 명을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자체 계획만을 밝히고 있는데, 국회에서 추산한 비수급 빈곤층만 해도 370만 명으로 나타나 있는 상황에서 왜 사각지대 빈곤층 지원대상을 240만 명으로 잡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차피 재정 건전성을 다소 훼손하는 한이 있더라도 거액의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면서 이처럼 많은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는 불가피한 사유가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둘째, 거액의 긴급 지출이 이뤄지는 만큼 예산 누수의 위험성 또한 큰데도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어제 대통령이 횡령금 등 2배까지 환수, 예산실명제 도입 등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런 단편적인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기회에 종합적인 예산낭비 방지대책을 수립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추경을 편성하는 마당에 기존 예산사업 중 낭비가 없는지 점검하여 타당성이나 긴급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축소 내지 폐지하여 그 재원을 긴급대책에 투입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역시 별다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에게는 위기 극복을 위해 부담 증가를 감수하자고 하면서 정작 정부는 고통을 분담할 의지가 없는 듯하다.

셋째, 이번 추경안에는 긴급대책뿐 아니라 4대강 정비사업 등 이미 당초 예산에 상당액이 편성되어 있고, 긴급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대한 추가 예산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국민의 위기감을 이용하여 긴급성이 떨어지는 선호사업을 ‘끼워넣기’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고통을 이용하여 잇속을 챙긴다는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최소한 녹색성장 등 미래대비 투자 명목의 2조 5,000억 원 편성안은 이번 추경안에서 제외하고, 정기 예산심의 때 엄정한 심의를 거쳐 추진하는 것이 옳다.

넷째, 이번 추경안 중 11조 2,000억 원은 세수 감소에 따른 보전액이다. 악화된 지방재정 보전을 위해 교부세 감세분 보완, 지방채 추가 인수 등의 대책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부자 감세’로 비판받아온 현 정부의 감세 정책이 실제로 국가 재정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 정책이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세수 감소로 인해 11조 원의 추가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기존 감세정책의 수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키기 위해 세계잉여금, 기금 여유자금 등을 동원하여 국채 발행을 줄인 점을 부각시키는 듯한데, 이 역시 국가재정의 일부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궁극적으로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리한 감세 정책으로 11조원 플러스 알파의 세수 손실을 초래하고도 반성조차 없는 정부의 태도에 국민의 한숨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극심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추경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급하다고 해서 소중한 국민 세금을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위기를 핑계로 급하지도 않은 사업을 슬쩍 끼워넣는 일은 국민을 호도하는 정당하지 못한 태도일 뿐 아니라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가혹한 처사이다. 또한 거액의 국민 부담을 추가하면서 스스로의 정책에 대한 반성이나 재정립이 없다는 사실은 정부의 책임의식에 의구심을 품게 한다. 국민에게 고통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기에 앞서 정부가 새롭고 강력한 의지를 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책을 제시하기 바란다.

2009년 3월 24일


공동대표 박헌권 윤영진 지현
예산감시위원장 김태일